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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변곡점이 될, 대마도 1박 2일
이*주 님 2016.07.29 조회 2359아래 내용은 고객님께서 직접 다녀오신 여행 상품에 대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방학하는 날, 포항으로 가서 덕천강을 태우고 최근 개통했다는
포항-부산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부산에 사는 구필* 선생님이 생각나 연락을 했더니
반가운 목소리가 그저 감동이다. 우리들 마음을 알고 숙소와 교통편까지 두루두루 알아봐 주는
그 본능적 친절함에 감동했고,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 정확하게 나타나는 그 깔끔한 매너와 배려가 또한 감동이다.
게다가 보수동 책방거리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단골집으로 안내해서 저녁식사까지 대접하는 그 오지랖이 놀랍다.
1990년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이 26년의 세월이 흘러도 어찌 그리 그대로인지..... 잊지 않겠소이다.
우리 둘의 대마도 여행은 부산에서 하룻밤 자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구 선생님과 만나 경주와 포항 근무 시절의 옛 흔쾌한 추억을 되살리며 이야기를 나눴고
그 이야기는 밤 11시 쯤 되어서야 끝이 났다. 구 선생님과 함께하는 동안에
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두지 못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만 것이 못내 아쉽다.
부산의 해운대에 있는 어느 고층아파트가 눈에 가득 들어오기에 한 컷 담았다.
하룻밤 머물게 될 숙소 입구다. 토쿄와 요코야마를 연상시키는 호텔의 이름이다.
다음날 새벽에 잠을 깨어 한 시간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만들 수 있었다.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과 초량동 일대를 산책삼아 둘러보기로 했다.
2년 전 내가 속한 문학회에서 문학기행을 왔던 곳이기도 해서 낯설지 않았다.
김민부 전망대에서 항구쪽으로 본 조망이다.
김민부 작사, 장일남 작곡 '기다리는 마음'이란 가곡은 한 때 나의 18번이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 발표회 때, 독창으로 부른 바 있고, 술자리에서도 트로트 풍으로 변화시켜 부르면
꽤나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해서 즐겨 부른 적이 있다. 추억의 가곡이라고나 할까.
부산역 광장
부산역 옆 토쿄인 건물, 하룻밤 묵었던 곳이다. 비용은 2인 1실 80,000원 정도고 조식은 서비스한단다.
토쿄인 숙소에 묵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조식을 먹기 위해 2층 식당에 들렀다.
부페식인데 먹을 것이 다양하고 그런대로 입맛에 잘 맞았다. 덕천강도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숙소에서 차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 노랑풍선 여행사 김현숙가이드와 미팅을 하고
대마도로 출발하기 직전에 기념사진을 하나 찍어 두었다. 가슴팍에 단 노란 표시는 21명의 일행들이
서로 알아보기 좋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다. 이렇게 우리들의 1박 2일 대마도 여행은 시작되었다.
우리가 타고 갈 배는 오션플라워호다.
부산에서 대마도의 가장 큰 도시 이즈하라까지는 약 2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자그만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점심 식사를 하게 될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즈하라의 골목길은 사람들이 거의 오가지 않는 조용한 분위기를 머금고 있었으나 생활쓰레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일반 가정집은 얼핏 봐도 마당이 협소해 보이지만 나무만큼은 한두 그루씩 꼭 심어서 관리를 잘하고 있었다.
백제시대 사찰로 알려진 슈젠시(修善寺)에 들러 가이드로부터 여러가지 설명을 들었다.
사찰의 기능 중에 무덤을 관리해 주는 기능이 있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들이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수많은 비석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절은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해 지어졌음을 알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무덤이 혐오시설로 인식되어 거주지역에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데 비해
일본에서는 특정 거주지역 내에 위치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죽은 영혼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유럽쪽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긴 하다.
항일운동을 하다가 대마도로 끌려와 순국한 면암 최익현 선생을 기리는 최익현 순국비가 눈에 띈다.
이즈하라에서 약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이 있다.
'아유모도시'라고 한 것은 계곡의 바위 위로 흐르는 물이 햇빛에 반짝이면
마치 은어가 돌아오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라고 한다.
계곡을 끼고 불어오는 바람이 친구처럼 살갑게 느껴져서 좋았다.
가네이시(金石) 성, 1669년에 만들어진 성으로 내전, 태풍 등으로 많이 상하고 부서졌지만 정원과 성벽은 그대로 남아 있고,
성문은 1990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일본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독특함이 용마루와 처마끝, 각진 목재에 고스란히 달려있다.
고종 임금의 막내딸 덕혜옹주와 대마도 본주의 아들이 결혼한 것을 봉축하는 비,
1925년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와 유학생활을 하였으나 부적응에 따른 외로움과
고국에 대한 향수로 몽유병, 조발성 치매로 시달린 적이 있는 덕혜옹주, 1931년 쓰시마 도주의 아들
다케유키와 강제 결혼을 하여 딸 마사에(정혜)를 낳았지만 더욱 심해진 지병으로
15년간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지내다 1995년에 이혼했다. 1962년에 귀국하였으나
20년만인 1982년이 되어서야 호적이 만들어졌고, 실어증과 지병으로 힘겨운 삶을 살다가
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덕혜옹주를 주인공으로한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는데.....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10년 동안 12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조선통신사의 규모는 300~500명에 달하는 조선의 문화사절과 같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당시 대마도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국제교류였다. 조선통신사비는 통신사의 방문으로 이루어진 활발한 교류와 우호관계를
21세기 한일우호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1992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큼직한 오동잎이 아래로 세 갈래, 그 위에 오동꽃 세 송이가 나란히 솟아 있는 형상인데,
세 송이 꽃 중에서 가운데 꽃은 꽃잎을 모두 7장, 양 옆의 꽃 들은 5장씩 달고 있다.
이 문장은 침략과싸움을 즐겼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장이라고 한다.
과거에 조선총독부도 사용했으며 현재에는 총리실이 그대로 쓰고 있다는데,
아시아 지배를 꿈 꿨던 일본 팽창기의 힘을 그리워하고, 천황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의도가 담겨있는 것 같다. 그리고 조선을 지배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해서인지
전쟁을 할 수 없는 현재의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전쟁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것 같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부르짖고 있다지만 그들의 침략 야욕은 늘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실을 보면 우려되는 바가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
우리 정부의 굴욕적 외교가 그렇고, 국민들의 안전을 생각지 않는 권력자의 파렴치함이 그러하다.
구한말의 매국노들이 판을 치던 세상 같아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일본인들 가운데는 전쟁을 하지 않고 우리나라와 가깝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평화론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평화를 원하는 국민들의 정서와 다르게 극우적이고 호전적인 정치인들의 야욕은 식을 줄 모르고 있으니
지금 우리들로서는 구체적인 대응 수단을 마련해 놓아야 하고, 적극적으로 외교전도 벌여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국민들을 등에 업고 소신껏 일하면 될 것을,
왜 현 정부는 강대국의 외교적 수사에 휘말리고 눈치만 보는 사대주의적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즈하라 시에 있는 어느 신사에 들렀다. 김현숙 가이드는 많은 설명을 했지만
여기서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일본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하룻밤 묵게 될 하루야 호텔 앞에서 친구는 기념사진을 한 장 남겼다.
침대방과 다다미방이 반반씩 있는데 어느 방에서 자게 될지는 복불복이란다.
이왕이면 다다미방에서 자는 행운이 생겼으면 했는데 그 바람은 이뤄졌다.
숙소에서 2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식당에 들러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저녁 식사는 푸짐했다. 부산에서 온 아주머니 두 분과 자리를 같이하면서 더욱 풍성해졌다.
비단잉어횟집을 경영하는 아주머니 한 분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고기를 굽어서
일일이 배급을 해 주는 친절함을 보여줘서 감동이었다. 부산의 투박한 사투리가 더욱 친근했다.
바다로 연결되는 수로엔 온갖 고기들이 눈에 띄었다. 가오리, 숭어, 복어 등이 자유자재로 오고 갔다.
우리나라 같으면 낚싯군들이 북적댔을 테지만 이곳에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지 매우 평화로웠다.
각 가정에서 배출되는 생활오수가 유입되어 흐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바닷물이 이즈하라의 골목끝까지 아무런 방해물 없이 닿아 있는 것 같았다. 부러운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파출소(지구대)에 해당하는 건물인 것 같다. 매우 깔끔해 보인다.
생활필수품을 구입할 수 있는 대형 매장이 보인다. 오늘 저녁에 입을 축일 수 있는 맥주 몇 병을 사기로 했다.
맥주맛이 너무 좋았다. 평소에 술을 잘 못 마시는 친구는 맛이 좋다면서 마셨다.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친구는 전날 잠을 별로 못 잤는지 네 번째 캔을 마실 때쯤 슬며시 눕더니 잠들어 버리고
나머지는 내가 다 마셨다. 조금 모자란 듯해서 다시 숙소를 나와 마트를 찾았다.
폐점 시간이 10시라고 했으니 아직 20여분의 여유가 있다.
천천히 구름과 숨바꼭질하는 달빛을 받으며 밤길을 걸었다. 이국땅에서의 어슬렁거림,
그것도 달밤의 낭만을 즐기면서 걷는 처용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괜찮았다.
폐점시간이 다 되어가니 대형매장에도 사람들이 거의 없다.
결국 두 캔을 더 사다가 마시면서 여행의 하룻밤을 정리했다.
다음 날 5시 30분경, 아침 산책을 위해 친구와 함께 숙소에서 나와 산쪽으로 난 골목길을 걸었다.
대마도에서 볼 수 있는 차량의 대부분은 경차들이다. 좁은 공간임에도 주차를 아주 빈틈없이 해 놓아서 눈길이 절로 간다.
이즈하라에서 하룻밤을 자고 히타카츠까지 가는 여행은 시작되었다.
오후에는 히타카츠에서 부산행 배를 타야 하니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국경의 섬인 대마도 여행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만관교를 통과하면서
에보시다케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서
에보시다케 전망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풍광은 베트남의 '하롱베이'를 연상시킨다.
탱글탱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듯한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떠서 구물거린다.
덕천 선생은 나보다 두 살 위의 친구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 인연이 계속되고 있다.
후포 고등학교 근무 시절에는 평교사협의회를 만들어 독재 교장에 맞서 함께 싸우던 기억이 새롭다.
서른이 넘어서 초등학교 교사인 이동선 선생님과 결혼을 했고, 아빠 엄마를 쏙 빼닮은 아들 딸 남매를 두었다.
부인 이동선 선생님은 연극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극단 '형영'(1993 창단) 소속 배우로서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남다른 열정을 불태웠던 분이다. 나도 같은 극단 소속 배우였기에 너무 잘 안다.
그러나 이동선 선생님은 올 4월에 오랜 세월 앓아오던 암을 극복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어떻게든 부인을 살려보려고 수년 동안 뒷바라지하고 애를 썼지만 부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요즘 덕천은 가슴이 아리다. 눈물도 남몰래 자주 흘리고 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도 슬픈 일상에서 벗어나 변화를 도모해 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제안해 보았던 것인데,
친구가 마침 잘 응해 줘서 성사된 여행이다. 비록 짤막한 여행이지만 슬픔의 변곡점이 되길 바란다.
밀가루붕어빵이 아닌, 찹쌀붕어빵을 사서 먹어보는 체험을 해 보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네 개를 사서 부산의 아주머니들과 나눠 먹었다. 음식을 나누는 일은 즐겁다.
일본 건국 신화의 주역인 하늘 신과 바다 용왕의 딸을 모신 해궁신사는
다른 신사들과는 달리 5개의 도리이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5개 중에서 2개는 밀물 때 밑부분이 2미터 가량 바다에 잠기는데
이는 바다를 통해 신이 들어오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사 옆에 일본의 씨름인 스모 경기장이 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궁금했는데,
가이드가 신명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스모는 제사 형식을 운동이라는 사실을.
와타즈미 신사가 있는 곳임을 알리는 돌표지판
한국 전망대, 한국과 대마도의 거리는 49.5킬로미터 정도다. 청명한 날씨에는 육안으로 부사을볼 수 있으며,
밤이면 화려한 부산의 야경이 보이는 곳이다. 전망대는 우리나라 팔각정 모양을 하고 있으며,
바로 옆에는 '조선국 역관사 조난 위령비'가 있다. 1970년 조선통신사가 대마도로 향하다 좌초된 것을 추모하는 비다.
한국전망대에서 조망해 볼 수 있는 경치인데, 앞의 섬은 항공자위대가 주둔하고 있다고 한다.
미우다하라 해수욕장, 일본 100대 해수욕장에 이름을 올린 아름다운 곳,
부산에서 다시 포항으로 가는 길, 광안대교 위를 달리면서 전날에 담아두었던 고층 아파트의 위용을 담았다.
덕천은 운전하느라 수고했다면서 포항의 북부시장 안에 있는 물회집으로 안내해서
세꼬시 물회 한 그릇을 사 줘서 맛있게 먹고, 아라비카 커피전문점에 들러 이번 여행을 정리하고
야간학교 학생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김종철 선생님과 만나 그간의 정담을 주고 받다가
덕천의 아파트로 가서 하룻밤을 다시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덕천과 싸우나를 함께 한 뒤,
조만간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나는 울를도로, 덕천은 안동으로 또 다른 여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