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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고대속으로 떠난 고대문명의 발상지 이집트 여행8~10편
이*숙 님 2018.12.21 조회 2822아래 내용은 고객님께서 직접 다녀오신 여행 상품에 대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2018.11.16. 아프리카 이집트 록소르 카르나크 신전 8편
이 여행기는 지난11월 남편과 같이 다녀온 이집트 여행기 입니다.
1인 1편의 후기로 제한되어 있는 노랑풍선의 사이트 규정상 그동안 남편이 1편 부터 7편 까지 이어서 올려 오다
한편으로 모두 올리기엔 용량 초과로 인해 같이한 제가 8편 부터는 간략 해서 올려 보려 합니다.

우리들을 태운 크루즈선이 룩소르 근처의 나일강변 선착장에 도착하자 우린 하선 해서 대기하고 있던 관광 버스편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룩소르 시내로 향했다.
룩소르는 문화유산이 많은 관광지 라서인지 시내로 들어가는 꽃길도 아름다웠고 카이로나 다른 도시 보다는 대체적으로 도시가 깨끗했다.
룩소르 (Luxor)는 이집트의 남부에 있는 도시이다.
고대 이집트 시대 부터 존재해 왔으며 도시의 면적은 416km²이다.
룩소르신전, 카르낙신전, 멤논의 거상 등을 포함한 유적들이 위치해 있고 서쪽지역에는 왕가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이 있다.
매년 수천명의 관광객들이 찾으며, 룩소르 국제 공항이 위치해 있다.
시민들은 주로 사탕수수 농사에 종사하며, 경제는 관광업에 의존하고 있단다.
우린 룩소르에 도착 해서 카르나크 신전 부터 먼저 간다.

이집트 문명을 제대로 체험하고 `진짜 이집트`를 보고 싶은 여행자라면 바로 이곳, 룩소르를 필히 방문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다.다.
이곳 룩소르엔 피라미드 빼고는 모든 유적이 모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해서 이곳은 여행객들이나 고고학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단다.
심지어 이곳을 문화 유적의 거대한 야외 박물관 이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정말 그말이 실감이 났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서로 유적지가 산제 해 있다.
룩소르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는데.
해가 뜨는 동쪽은 산 자들의 땅이라서 카르나크와 룩소르신전 같은 신전이 있고 해가 지는 서쪽 지역은 죽은 자들의 땅이라고 해서 왕가의 계곡 등 주로 무덤이 위치하고 있다.

(신전 입구에 있는 조형물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안쪽으로 이동)
카르나크 신전
고대 이집트인에게 가장 신성한 장소였다는 이 카르나크 신전은 룩소르 북쪽으로 3km정도 떨어져 있으며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북쪽의 무트 신전, 중앙의 아몬 대신전, 남쪽의 무트 신전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2.4km의 벽돌담으로 둘러쌓여 있고, 모두 8개의 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현재도 계속 발굴이 이루어지는 중인데 전체 신전의 1/4 정도만 모습을 드러낸 상태라고 한다.
1570년간 사용되었고 2000여년간 계속 건설되어온 이집트 최고 최대의 신전이란다.
이곳 신전에서 룩소르 신전까지 이어지는 4km의 길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는 그 길이 발굴 복원 도중 무슨 이유에서인지 작업이 중단되고 있었다...
나일강이 넘칠 무렵 파라오는 이 곳에 오곤 했단다.
현 이집트 대통령은 관광 사업에 많은 신경을 쓰고 관심도 많아서 인프라 구축에 열심이란다.

카르나크 신전은 기원전 2000년부터 건립되기 시작했지만, 역대왕에 의해 증개축이 되풀이되어, 초기의 유물로는 제12왕조 세누세르트 1세의 성당만이 남아 있단다.
현재의 신전은 신왕국시대부터 1500년 뒤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걸쳐 건립된 10개의 탑문, 제19왕조의 창시자 람세스 1세로부터 3대에 걸쳐 건설된 대열주실, 제18왕조의 투트모세 1세와 그의 딸로 여왕이 된 하트셰프수트가 세운 오벨리스크, 투트모세 3세 신전, 람세스 3세 신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높이 약 23m의 석주 134개가 늘어선 대열주실은 너비 약 100m, 안쪽 깊이 53m로서 안쪽의 하트셰프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와 함께 보는이 들을 압도 한다.
이곳도 역시 도굴과 강대국의 갈취로 몸살의 흔적들이...

신전으로 들어서는 양쪽 입구를 지키고 늘어선 20개 양머리를 스핑크스상들....




고대 이집트 최고의 군주로 66년간 다스린 람세스 2세 입상이다.

카르나크 신전은 입구부터 그 웅장함에 압도된다.
카르나크 신전의 하이라이트인 열주전은 가운데 12개의 거대한 기둥을 중심으로 무려 122개의 기둥이 둘러싸고 있었다.
40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곳곳에 채색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 화려했던 색감을 어렴풋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신비함 마져...


















이 신전의 조감도이다.

성스러운 신비의 연못이란다.


눈으로 본 모습들을 사진으로 모두 표현 할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석조물과 새겨진 그림 하나하나의 설명을 모두 드리지 못함에 죄송함이....


이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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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6. 아프리카 이집트 록소르Luxor Temple 신전 9편

람세르 2세의 혼, 룩소르 신전
이집트 문명이 남긴 문화유산 중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고왕국 시대에 만들어진 피라미드들이지만 문화적으로 번성했던 시기는 신왕국 시대였다.
룩소르는 ‘테베’라고 불렸던
상이집트 신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지금은 소도시가 됐지만 한때 인구가 100만명에 달했을 정도로 번성한 도시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람세스 2세도 당시의 파라오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룩소르를 백개의 문이 있는 호화찬란한 고도’라고 칭송했고 나폴레옹의 군대 역시 이집트 원정에 실패하고 돌아가면서도 룩소르의 매력에 한동안 퇴진을 멈췄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가는 아문신을 모신 또 하나의 신전 룩소르 신전은 카르낙 신전에서 3km 떨어진 나일강 변에 있다.
이 신전은 카르낙의 부속건물로 람세스 2세에 의하여 건설되었다.
람세스 2세를 상징하는 석상과 오벨리스크가 전면에 배치되어 있으며 가운데 중정에는 좌우와 중앙으로 거대한 열주가 세워져 있다

제18왕조 말기 아멘호테프 3세(BC1390~53 재위)는 나일 강 가까이 있는 이곳에 강둑을 따라 아름다운 신전을 지어 이집트의 주신(主神) 아몬과 여신 무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콘스에게 바쳤다 한다.
제18왕조(그 이전은 아닐지라도)에 일찍이 그곳에 신전이 있었겠지만, 그곳에 먼저 있던 건축물 중 남아 있는 것은 작은 부속건물뿐이다.
아멘호테프 3세의 아몬 대신전은 투탄카멘과 호렘헤브가 완성했고, 람세스 2세가 증축했으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에 이를 좀더 증축했다.
이 신전의 다주식 강당은 한때 그리스도교 교회로 쓰이기도 했으며 신전의 서쪽으로는 콥트 교회 유적지도 찾아볼 수 있다.
원래 아몬 대신전은 주랑으로 둘러싸인 큰 중정과 그 너머 여러 개의 강당 및 작은 방들로 되어 있으며 한 강당에 화강암으로 된 알렉산더 대왕의 사당이 있다.
기둥이 늘어선 큰 복도의 3면을 멋진 파피루스 다발 기둥이 2줄로 둘러싸고 있는데, 그 기둥머리는 산형화 모양의 파피루스 꽃봉오리를 본딴 것이다.
북쪽 끝에 탑문들로 둘러싸인 출입구를 세우려고 했으나 그대신 높이 16m의 기둥 14개가 늘어선 웅장한 주랑을 증축했는데, 이 주랑은 신전의 가장 뛰어난 구조물이며 이 기둥머리 역시 파피루스 산형화 모양이다.
이 주랑은 카나크에 있는 것과 비슷한, 기둥이 많은 강당의 중앙 회중석을 만들려던 것일 수도 있으나 측면복도가 없고 양쪽 아래를 벽이 둘러싸고 있다.
람세스 2세는 바깥 뜰을 증축했는데 2열 주랑의 각 기둥 사이에 거대한 자신의 동상들을 만들고, 축제와 시리아 전쟁 장면을 조각한 높은 탑을 세웠다.
이 탑 앞에 거대한 파라오 상들과 1쌍의 방첨탑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아직도 남아 있으나 다른 하나는 1831년 파리 콩코드 광장으로 옮겨 졌다.
신전의 앞뜰에는 이 지방 이슬람교 성자인 셰이크 유수프 알하가그의 이슬람 사원이 있는데 이 성자의 축제에는 '오르페 신의 아름다운 축제'라는 고대 의식을 흉내내어 배로 행진을 한다.
2월 19일에 갖는 이 축제중에 아몬 신이 카나크로부터 크고 아름다운 배를 타고 축제 복장을 한 테베 사람들의 시중을 받으며 룩소르에 있는 다른 신전을 찾아온다고 한다.
대 주랑 벽의 부조는 이 축제에서 신성한 항해 행진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란다.

과거 신왕국 시절에는 두 신전은 스핑크스길로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신전은 신왕국 제18조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가 기초한 것이란다.
그러나 이곳을 결정적으로 신전답게 바꿔놓은 이는 람세스 2세다.
그는 전국 어디를 가도 그의 발자취를 볼수있다.
이집트 최전성기의 파라오답다. '건축물의 파라오'라고 불릴 만하다.
이 신전 역시 테베의 주신 아몬신에게 바쳐진 것이다.


이제 탑문 앞에 람세스 2세의 대형 좌상 2개가 우리를 환영하는 듯하다.
원래는 6개가 탑문 앞에 배치돼 있었다고한다.
그리고 왼쪽 좌상 앞에는 25m짜리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신전 전체 구조와 바란스가 맞지 않게 하나만 서 있는 것이 좀 어색하다.
그런데 오른쪽을 보니 오벨리스크가 놓여 있었던 듯한 좌대는 있는데 오벨리스크는 없다.
정확한 속내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파리 콩코드 광장으로 옮겨진 바로 그 오벨리스크 자리란다




탑문을 들어서면 첫 번째 안뜰인데 한 변이 50m가 넘는다.
이곳에는 원기둥과 함께 곳곳에 파라오의 좌상과 입상있다.
그리고 작은 크기의 왕비와 공주의 조각상이 들어서 있다.
비록 성한 것은 별로 없지만 당시의 위용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좌상 중 으뜸은 아무래도 람세스 2세의 그것이다.
람세스의 무릎 아래에는 한 여인이 있는데, 바로 네페르타리다.

또 여기서 동쪽 위를 올려다보면 좀 희한한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신전 위쪽으로 이슬람 사원 하나가 있다.
이 사원은 지금도 가동 중인 상태다.
이사원은 오랜 세월 룩소르 신전이 땅속에 파묻혀 있던 중에 이슬람 사원이 그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라고 가이드가 설명 했다.
그럼 철거를 시키고 원상 복구를 왜 하지 않는냐니까.이 사원도 오래 되었고 너무나 유명한 사원이라서 이전을 할수 없단다.
참으로 신기 했다.
신전 위에 올라탄 사원이...이것도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관심을 끈다.



이제 해는 지고 조명이 켜지기 시작한다.
난 이때가 사진 촬영에 제일 어려움을 느낀다.

두 번째 안뜰에 들어서면 투탕카멘과 그의 아내가 앉아서 관광객을 맞는다.
얼굴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젊은 부부인지 알 수 있다.
자신들을 보기 위해 밀려오는 관광객들에게 파라오 부부는 지그시 웃음으로 답한단다.








두 번째 안뜰의 원기둥은 파피루스 양식이다.
마치 파피루스 다발을 묶은 것 같은 모양이다. 원기둥이 있는 홀 뒤편에는 몇 개의 방이 있는데, 그 중 중심에 있는 방은 로마 황제에게 경배를 올리는 곳이다.
로마제국이 이집트를 속주화하면서 신전에 많은 변형이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그러고 보니 주변 벽에는 아직도 로마인들의 모습을 그린 채색화가 남아 있었다.



축제기간은 고왕국 시대에는 14일이었고, 신왕국 시대에는 22~23일이었다.이.
.이곳에는 헷(히타이트) 족속과 싸우는 람세스 2세의 부조와 오페트 축제 때의
행렬 모습을 새겨놓은 부조가 있다.

Luxor Temple 탐방후 선택 관광으로 룩소르 시내 야간 마차 투어가 있었다.
1시간 투어에 1인당 40불

야간 시티 투어후 크루즈로 돌아가 피로한 하루의 휴식을.....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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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7. 아프리카 이집트 룩소르 왕가의 계곡 10편

우린 나일강 크루즈 3박 4일 마지막 날 크루즈에서 짐을 챙겨서 하선후 이제 부터는 버스와 호텔 투어에 들어 간다.
그동안 짐을 챙기는 일도 없고 먹고 싶은것만 골라 먹는 뷔페식으로 침대에서 누워 불편 없이 이동 하던 크루즈를 떠나 매일 짐을 챙겨 버스 투어로 진행된다.
이날 오전 까지 룩소르 탐방을 한후 오후엔 이곳의 최고 휴양지인 홍해 바닷가 후로가다로 떠난다.
우선 우린 오늘의 첫 코스인 왕가의 계곡이라고 불리우는 왕들의 무덤으로 간다.


왕들의 계곡에서 파라오의 무덤들은 탐방한다.
신왕국 시대엔 테베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룩소르 시의 서쪽 바위산 깊은 계곡 속에는 역대 파라오들의 공동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건설한 피라미드들이 도굴됨을 피하고자 자신들의 무덤은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 바위산에 비밀리 조성한 것이다.
이 지역에 묘를 만든 것은 제18왕조 투토모스 1세부터 20왕조 람세스 11세까지의 파라오들로 현재까지 계곡 동쪽에서 58기, 서쪽에서 4기 등 모두 62기의 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많은 묘중에 우린 3 곳의 묘만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우린 코리리 열차를 타고 왕의 무덤으로 왔다.....
그리고 입구에서 가이드님의 설명 부터 꼼꼼히....
알아야 보인다.

네크로폴리스라고도 불리는 이곳에 파라오의 무덤군으로 유명한 왕들의 계곡과 왕비의 계곡, 죽은 자들의 복을 비는 신전들이 자리 잡고 있다..
피라미드는 본래 파라오의 무덤이지만 이집트 왕국의 후반기에 들어서 귀족과 일반 대중에게도 피라미드 형식의 무덤이 유행하게 되었다.
.
크고 작은 피라미드들이 룩소르의 네크로폴리스를 뒤덮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피라미드는 쉽게 부서지고 도굴을 당해 무덤 속의 보물이 없어졌다.
.
그러자 파라오들은 깊은 계곡에 암벽을 뚫고 무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아무도 모르는 바위 무덤 속에 시신을 보존하고, 자신이 다시 태어나서 쓸 금은보화를 도둑맞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곳도 도굴꾼들의 눈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서 도굴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20세기에 도굴의 피해 없이 완벽하게 보존된 파라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황금 마스크와 화려한 부장품으로 잘 알려진 투탕카멘 왕의 무덤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왕들이 잠들어 있던 무덤속 깊숙히 들어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옴긴다.


62번 묘의 조감도다.

무덤 입구다. 내부 촬영은 금지다.

또 다른 8번 무덤의 조감도....


더 이상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해서 아래 벽화들과 모든 자료들은 왕가의 계곡 기념품 상가에서 구입한 한글판 안내 책자에서 발취한 것들이다.
그 한글판 이집트 관광자료 책자는 1권에 20불 달라는 것을 여럿이 흥정을 거듭해서 5권을 구입하는 조건으로 1권당 7불에 구입한 것이다.

람세스 9세의 지하묘 벽면의 벽화
이 무덤들은 바위를 파서 만든 암굴 묘다.
내부는 모두 동일하게 입구에서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고 맨 끝에 석관을 두어 파라오들이 안치되어 있다.

람세스 9세의 지하묘 벽면의 그림이다.

벽면에는 주로 죽음에 관한 내용들이 많이 표현 되어 있었다.
람세스 9세의 묘에 새겨진 하토르와 호루스가 함께 태양의 나룻배에 올라 있는 모습이며 람세스 9세 묘에는 천정의 그림이 유명했다.

또 다른 한 곳은 깊이가 꽤 깊은 람세스 2세의 손자인 람세스 3세의 묘였다.

이곳 지하 묘들중에 람세스 2세의 아들인 메렌프타의 묘는 규모가 컸다.

이 그림은 투트모스 3세 무덤 내부 벽화, 사후세계로 가는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 사진은 투트모스 3세 석관

이 그림은 람세스 1세의 무덤 벽화다.
왕은 호루스신과 야누비스에게 둘러싸여 있다.

많은 왕가의 묘들이 아무리 깊이 숨기며 감추고 도굴 방지 대책을 세웠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많은 무덤들 중 그래도 유일하게 널리 알려진 투탕카멘 왕의 무덤만은 피해를 입지 않고 발견되었다고 한다.
투탕카멘의 묘는 20c 영국의 하워드카터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왕의 묘는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 많은 보물들과 투탕카멘 왕의 미라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투탕카멘 왕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일찍 요절했고 그래서 급하게 무덤을 만들어야 했기도 했고 투탕카멘의 묘 입구 바로 위에 람세스 6세 무덤 입구가 덮여 있있었다
해서 투탕카멘의 묘는 도굴로부터 안전했다고 한다.
혹시 '투탕카멘 왕의 저주' 란 얘기 들어 보셨나요?
투탕카멘 왕의 묘를 발굴했던 하워드 카터를 비롯한 발굴 대원 11명이 원인 모를 병으로 7년 안에 모두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잠자고 있던 파라오를 깨워 낸 죄로 저주를 받은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 뒤에 사실이 밝혀졌다.
무덤 속 미라실은 곰팡이가 살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고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곳에서 수천 년간 살던 곰팡이들은 무덤이 열리고 공기가 들어오자 포자로 날아가 발굴 대원들의 코와 입으로 들어가 목숨을 빼앗은것이었다.

이 모든 부벽화들은 3천 년 전의 것이라 생각되나 손을 대면 물감이 바로 묻어 닐듯 아직도 선명한 색깔이다.
붉은색은 적토에서, 황색은 황토에서, 청색은 감청석에서, 녹색은 공작석에서, 흑색은 흑연에서, 백석은 백색의 석회암에서 안료를 캐내어 아교나 수지, 달걀 흰자에 개어서 사용했다고 했다.
그리고 인물의 얼굴은 반드시 옆모습으로 표현 했고 몸과 어깨는 정면이며
복부와 다리는 옆면으로 그려져 있었다.

투탕카멘의 관을 연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
하워드 카터는 1873년 영국 노폭 주 캔딩턴이라는 마을에서 아홉 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지니 못한 그는 동물화가였던 부친에게서 초보적인 교육을 받고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주덕분에 히에로글리프(상형문자)를 묘사하는데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이집트 조사대의 대원으로 발탁되어 이때부터 그의 이집트 인생이 시작된다.
1891년부터 8년간 베니하산과 아마르나 등으로 유명한 고고학자 페트리를 비롯한 탁월한 고고학자들 밑에서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다 이집트의 고고청 장관이던 마스페로의 눈에 띄어 1899년에는 이집트 누비아 지역의 인스펙터(우적 감사관)에 임명되었다.
관광 차 이집트에 왔다가 진심으로 매료된 미국의 갑부 시어도어 데이비스를 만나게되고 그는 '왕들의 계곡'을 깊이 발굴해보자고 제안하게 된다(발굴에는 자금이 많이 들기때문에 후원자가 필요하다)
데이비스는 명성을 높이기위해 후원을 약속하고 카터는 그의 지원속에서 투트모세 4세의 무덤을 발견했다.
발견은 했지만 너무 번거로보여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채 황폐해져 있던 무덤 KV20.이것을 일년에 걸쳐 파내려가서 마침내 현실에 도착해 하트셉스트 여왕의 무덤임을 밝혀냈다.
고고국은 왕묘내에 전기를 끌어들여 조명을 밝혀서 관광객이 즐길수 있도록 했다. 예전에 발견된 세티 2세나 메렌프타의 무덤을 청소하다가 하트셉스트의 유모 무덤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간의 왕들의 계곡 발굴 기록들을 상세하게 조사하고 순서있게 발굴을 계속하면서 람세스 2세와 메렌프타의 항아리가 13개 수납되어 있던 창고등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거의 포기직전인 1922년 11월 4일 투탕카멘의 왕의 무덤을 발굴했다.
계곡 밑에선 밀폐된 무덤의 출입구로 이어지는 바위 층계를 발견한 것이다.
카터는 매장실 주위의 한 밀폐된 방에서 파라오의 미라를 발견했는데 세개의 외부 관 안에 매장된 이후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순금으로 만든 내부 관이 있었다.

위 사진에서 카터는 가장 안쪽 관에 부은 굳은 송진을 조심스럽게 벗겨내고 있다.
미라의 팔은 갈고리 모양의 왕홀과 회초리를 쥔 채 십자로 엇갈려있고 황금 데스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파이앙스 도자기, 유리, 홍옥수, 청금석 등으로 세공된 마스크에는 석영과 흑요석으로 만든 살아있는 듯한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
이 화려한 마스크 뒷면에는 사자의 서의 본문이 새겨져 있다.
투탕카멘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보물들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는것은 카터가 발견했기 때문이다.
카터는 투탕카멘왕묘의 발굴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발굴작업을 하지 않았다.







이제 왕가의 계곡을 뒤로하고 가까이에 있는 여왕의 계곡으로 떠난다.

다음편을 기대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