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두번보는 천지 (장용 가이드와 함께...)

임*용 님 2025.05.08 조회 111

아래 내용은 고객님께서 직접 다녀오신 여행 상품에 대해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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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가이드 “장용”님을 칭찬합니다.

글머리에 칭찬글을 먼저 들먹여서 여행 후기란에 올리기가 어색합니다만

내용글이 길어서 리뷰로 보는 것이 적절할 듯합니다.

 

대한항공을 이용하여 서파 및 북파로 등정하는 “두번 보는 천지” 프로그램으로 

4일에 출발해 7일에 도착하는 백두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06:00에 제 2 터미널에서 간단한 미팅을 마치고 탑승. 

08:55에 심양공항에 도착을 했습니다.

 

여행을 계획하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두산에서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으로 

연길공항의 이용을 추천했었습니다. 

 

물론 연길공항을 거쳐 룡정을 들려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묘지 탐방을 하는 것 또한 

뜻이 깊은 여행이 되겠지만 굳이 심양을 경유하고자 했던 이유는 주몽이 건국한 고구려의 첫 번째 도읍인 

환인현의 졸본성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졸본성 또는 홀승골성이라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 속의 소중한 흔적들이 

현재는 오녀산성이라는 가벼운 이름으로 불려 역사를 지키지 못한 서글픔과 더불어

많은 아쉬움을 가졌지만 우뚝 솟은 암벽의 산성이 마치 고구려의 기상을 느끼게 합니다,

 

정상까지의 900여 계단이 육십대 후반인 아내에게는 무척 힘들었을 텐데 아무런 내색 없이

함께 해주는 배려가 고맙기만 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혼강의 뛰어난 풍경과 활을 들고 있는 주몽 동상의 기개에 피로를 잊고 

첫날의 숙박지인 통화시에 도착하여 다음 날의 백두산 등정을 위해 잠을 청했습니다.

 

              

 

 

이튿날 호텔에서 준비해 준 도시락을 받고서 아침 5시에 백두산 아랫마을인 “이도백하”로 향했습니다. 

이도백하는 “백산수”의 어마어마한 생산공장이 있는 곳이자 백두산의 관문입니다.

 

며칠 전에 내렸다는 1미터가 넘게 쌓인 눈과 영하 20도의 매서운 추위로 인해 결빙된 도로가 아직 복구가 안되어 

입산통제가 되어있는 상태라 셔틀버스를 타고 장백폭포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입산관리하는 기관에서는 환경보호를 위해 염화칼슘과 같은 제설제를 쓰지 않고 

순순히 물리적인 작업으로만 도로를 복구한다하니 못 올라가는 아쉬운 마음도 컸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자연의 모습을 잘 지키려는 행동에 수긍이 되었습니다.

 

눈이 쌓인 장백폭포를 향하는 데크길에서 바라보는 설산의 위용과 그 아래로 흐르는 온천수의 열기가 감탄과 흥분을 자아냅니다. 

하얀 능선과 바람에 흩날리는 눈보라들이 히말라야의 설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음날의 서파를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의 빗소리에 불안했던 마음이 아침 7시에 현실화 되었습니다. 

이도백하에서 비가 오면 산정에는 보나마나 눈이 내릴거라는 염려가 ....

 

입산 통제 여부는 항상 아침 7시에 통보를 하기에 가이드선생님도 당일 통보 전까지는 미리 취할 방법이 딱히 없어 보입니다.

아쉬워하는 아내에게 천지를 보지 못함은 더없이 서운하지만 서파의 1400여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혹시 체력이 탈진되는 

상황이 안생기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자고 하며 위로를 했습니다.

 

이렇게 밍밍하게 천지 구경도 못하고 백두산 여행의 일정을 보냈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때가 묻지 않은 마음을 지닌 “장용” 백두산 가이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나 긴 버스 이동의 지루함을 미처 우리네 한국사람이 알지 못했던 중국 현지에서 살아야 하는 조선족의 삶.

그 성장 과정과 서로 같은 듯 하다가도 달라진 문화와 풍속, 결혼 방식과 또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의 

자녀의 교육과 더불어 스스로 홀로서기까지 과정들을 있는 그대로의 풀어 놓는 이야기들이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그 지역에 속한 다양한 민족들이 한결같이 안중근의사를 존경하고 우러른다는 말은 놀라움을 주었고 

수감 중에 받게 되는 어머니의 옥중서신의 내용을 다 외워서 즉석 낭송하는 열정은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다른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 중략….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죽음에 당당하게 임하고 또한 그것이 효도라 가르치는 조마리아 여사의 서신 내용 낭송 대목에서는 

왈칵 눈물이 솟았고 새삼 내 자신이 내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했음에 대한 부끄러움과 이국 땅에서도

자신의 민족적 자긍심을 잃지 않은 “장용” 가이드 선생의 기개가 돋보였습니다.

이 양반 틀림없이 만주에서 싸운 이름없는 독립투사의 후손처럼 여겨진다라고 아내도 말합니다.

 

내가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이 길이 당시의 대한 독립군들의 행군길이었고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만주 땅에서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등 각지의 조선 이민자들의 흔적을 예전부터 배워 온 역사가 아닌 현지의 후손들의 시각으로

느끼는 감정을 듣게 됨도 충격이었고 그런 기회를 준 상황에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백두산을 오르고 천지를 보고자 했던 생각을 우리 조상들의 애환과 염원이 담긴 

성스러운 산으로 또 다른 백두산의 한면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심양공항에 도달했을 때 그가 불러준 “백두에서 한라까지~”노래는 구구절절이 

감동과 눈시울이 뜨거워 짐을 아내와 저 , 그리고 버스 안의 다른 일행들도 함께 느꼈습니다. 

 

일상적 여행이 아닌 보다 더 깊이있는 자아의 여행을 하겠끔 만들어준 “장용” 가이드 선생을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1. 덧붙임 글

 

 장따꺼~ 시간되면 한국 한번 들어오세요.

 당신이 감동을 받았다는 낙산사의 정취도 느끼고 홍련암의 파도소리도 같이 들어봅시다.

 비록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내 고물차지만 함께 동해안 돌아보기에 부족함은 없을게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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